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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しい歴史教科書をつくる会記者会見 ハングル
「新しい教科書を作る会」の歴史教科書は、その会の手でハングルにされるようですので、私の拙い実力で汚すよりは、そちらを待つことにいたします。

ただし、「新しい教科書を作る会」記者会見の模様をテキストにして下さった方がいらっしゃいました。また、それを紹介している方の所で、その文章を拝見いたしました。

既にネットで情報を集める方々には常識ですが、特にこの記者会見を正確に伝えてもらいたい国の報道機関は素晴らしい脳内フィルターが掛かっているようです。せめて記者会見の内容に忠実なハングルがあった方がよいと考えました。

本来のテキストは「あー」などの言葉以外は全て記者会見通りに起こされているわけですが、拙い私の実力では訳しづらい部分に関して、文章をつなげたりしております。

それ以外はできるだけ原文に即した形で訳すようには心がけています。
しかし、なにぶん拙い実力ですので、お気づきの点、誤解・錯覚など発見された方がいらっしゃいましたら、コメントなど頂ければ幸い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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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13(금)■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기자 회견(5월 10일·외국 특파원 협회) 텍스트


【야기히데츠그 회장(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5분 6초까지】

오늘은 전통 있는 외국 특파원 협회에 초대를 받아 정말로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들은 두가지 목적을 가지고 왔습니다.

첫째로 요즘 저희 활동에 대해서 해외 미디어로부터 많은 취재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것보다는 공개된 장소에서 의견을 말씀드리면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아닐까 생각해서 이와 같은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둘째로는 금년 4월 초순에 문부 과학성에서 실시된 교과서검정에 합격한 저희 "새로운 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에 관한 부분을 이번에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여드리고자 하는 바입니다.

여기서 저희"모임"에 관해서 조금 설명 하겠습니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1997년 1월에 발족했습니다. 일본의 역사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로 새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 모임입니다.
일본은 60년전 미증유의 전쟁을 경험하여여 국내외에 몹시 많은 희생자를 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되어 많은 일본사람들이 "일본이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해온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빴던 것이 아닐까" 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역사연구에 의해 "그와 같은 감정을 가지는 것은 오버 액션이 아니니였을까" 라는 의문이 생겨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저희들은 오늘 학문 연구 수준에 입각하여 사실은 사실대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입장에서 역사 교과서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일본의 특수 사정입니다만, 일본 교육계에서는 여전히 마르크스주의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직원조합이 마르크스주의 입장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상이 역사 교과서에도 지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통치자는 언제나 악이며 일반사람들은 언제나 선이다"라는 계급투쟁의 역사가 교과서에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착오적 역사관에서 벗어난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것도 저희 모임 목적의 하나입니다. 저희들은 일본에···저희들은 일본의 아이들을 자유롭고 민주주의적인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키우고 싶습니다.

저희들은 1997년 1월의 저희 모임의 설립 취의서에도 나타나 듯이 세계사적 시점에서 일본국과 일본사람들의 자화상을 품격과 균형 있게 생생하게 묘사해 저희 선조들의 활약에 마음을 뛰게 하면서 실패했던 역사에도 관심을 가져 그 고락을 자기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일본인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일본사람으로서 자신과 책임을 가지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공헌할 수 있게 될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다행히 이러한 저희 그 활동 취지에는 발족 이래 각계로부터가 많은 지지를 받아왔습니다. 또 현재도 지지의 고리가 크게 퍼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번에 저희 "새로운 역사 교과서"의 영어 번역이 완성되었습니다. 수중에 나눠 드린 것이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관심 깊은 일본의 근현대의 역사에 관한 기술을 충실히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또한 아울러 중국에 관련되는 부분, 한국에 관련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각각 중국어·한국어번역도 작성해 중국어번역은 저희 모임 홈 페이지에서 어제부터 공개했습니다. 한국어번역도 가까운 기일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저희가 만든 교과서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 아무쪼록 실제로 보셔서 향후의 보도에 도움이 되었으면 다행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기회를 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후지오카 노부카츠 부회장(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5분 13초부터 11분 22초까지】

초대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많은 분이 이자리에 오신 것은 그 만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방금 회장님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저희들이 만든 교과서는 일본의 개벽 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대를 커버 한 중학생이 현실에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입니다. 따라서 근현대사 부분만이든지 전쟁부분만 취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점은 부디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저희 역사 교과서의 기본적인 입장은 이 취지서에도 적혀 있습니다만 어떤 나라에도 그 나라 고유의 역사가 있습니다. 일본에도 일본 고유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본의 고유의 역사 즉 바꿔서 말씀드리자면 저희들 일본인의 조상이 만들어온 그 행적을 쌓아낸 역사를 다음 세대들에게 올바르게 전하고 싶다는 입장입니다.
일본은 고대부터 유라시아 대륙에서 조금 떠러진 바다 위에 떠 있는 이 일본 열도라는 땅을 무대에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따라서 그 오래된 역사를 어떤 식으로 그리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옛부터 일본사람들이 그러한 지리적인 조건도 하나의 원인이 되어서 독자적인 문명을 만들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낡은 시대에 대해서도 질문이 있으면 대답하면서 논의하고 싶습니다만 , 아마, 여러분은 근대·현대의 사실에 주된 관심이 있으실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에도시대의 이야기부터 조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에도시대에 미국의 해군 제독 페리가 일본에 찾아온 3년전 즉 1850년입니다. 일본의 에도시대를 연구하는 미국 여성 연구자 수잔·한레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이 수잔·한레이씨는 "1850년에, 만약 지구상의 어디엔가 주거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 일본에 살고 싶다. 내가 일반적인 민중이었다면 일본에 살고 싶다. 그리고 귀족이라면 영국이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일본의 에도시대는 서민에게 있어서 몹시 풍부하고 살기 쉬운 사회였다는 것이 새로운 연구로 더욱 더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은 이 사실은 1950년대부터 미국의 연구자가 올바르게 주목했으므로 예를 들어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에드윈·O·라이샤워라고 하는 하버드대학 교수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일본에 대사로도 계신 적이 있습니다만 이 분의 일본사를 읽으면 에도시대가 풍부한 사회였다는 것이 실제로 그 후의 일본의 근대를 만들었다고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근대 일본의 역사는 오늘 나눠드린 영어번역 중 이 텍스트의 12 페이지를 봐 주십시오. 여기에 "메이지 유신의 의미"라는 읽을 거리가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읽어 보고 싶습니다.

【영역(생략) 9분 41초부터 10분 23초까지】

이런 식으로 메이지 유신이라는 것이 저희들 일본에 있어서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이 교과서에는 썼습니다.

길어지기 때문에 나머지는 간단하게 말씀드립니다만 그 후의 일본 근대 역사의 걸음거리는 저희 교과서는 결코 전면적으로 긍정한다든가, 혹은 전쟁을 미화하는 입장에서 쓰지 않았습니다. 그 증거로 전쟁의 비참한 사실를 특별한 스토리를 만들어 썼습니다.
만약 전쟁을 미화한다면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이와 같이 쓸 리가 없습니다. 나중에 잘 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아무쪼록 질문 받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자(민단): 11분 30초부터 12분 18초까지】

Q: 확실히 미화는 하지 않습니다만 적어도 숨긴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일단 "만주 사건은 일본이 일으켰다고 하는 것을 쓰지 않았는가?"라는 일로 변명같이 말하고 있습니다만 제일 큰 문제인 종군위안부를 삭제하는 운동이나 강제 연행을 삭제하는 운동을 하고 있거나 창씨개명을 정당화 하거나 혹은, 예를 들어 후지오카 선생님이 3월 27일에 모임에서 말씀하셨듯이 "종군위안부의 사람의 일본 대사관의 앞에서 항의하는 종군위안부 사람들은 노스 코리아의 스파이가 아닌가"라는 식으로 매우 선동적인 캠페인을 버리리고 있습니다만 이러한 일이 교육자로서 과연 "qualify? (알아 듣지 못함)"되는 것인가, 또 그러한 운동이 일본과 나머지 「neighborly gladly? gallantly? (알아 듣지 못함)」의 장래를 쌓아 올리는데 있어서, 적절한 교과서라고 생각하시는지 코멘트해 주시면 합니다.

【후지오카: 12분 20초부터 15분 6초까지】

A: 네. 그 예상대로의 질문여서, 대답하는 것은 많이 긴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합니다만, 너무 길게 하면 지루할까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포인트만 몇 개 정도 대답하고 싶습니다.

첫째 포인트는, 성 노예라고 하셨습니다만 종군위안부군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분은 모르실지 모르지만 한국의 교과서에 이와 같은 종군위안부 문제를 쓰게 된 것은 언젠가 아십니까? 일본 중학생이 사용하는 교과서에 일제히 쓰여지게 된 것은, 1996년입니다. 97년부터 사용하는 교과서에 쓰여졌습니다.
한국 교과서에는 그 후부터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자, 그 때 까지 한국의 교과서는 이 종군위안부 문제를 숨기고 있었는지요? 그것이 첫째 포인트입니다.

제2의 포인트 (종군위안부의 기술을) 삭제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조사하지 않으셨는지 모르지만 금년 검정을 통과한 역사 교과서에 종군위안부가 기술되지 않은 것은 저희 교과서만이 아닙니다.
여기에 아사히 신문 4월 6날짜 조간 기사사가 있습니다. "위안부, 전사 싣지 않았다"고 써 있습니다. 어째서 "저희 교과서만이 위안부를 삭제했다"고 말씀하시는지 오해에 의거한 질문이라고 저는 판단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포인트. "미화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교과서회사 전부가 삭제한 것은 저희들이 문제삼아 왔던 위안부 강제 연행 즉 일본군이나 경찰이 강제적으로 노예 사냥을 하고 한반도로부터 데리고 나갔다는 그러한 이야기가 완전히 사실에 의해서, 증거에 의해서 서포트되어 있지 않은 것이, 그 동안의 논의에 의해서 명백하게 되었기 때문에입니다.

기본적인 논점에 대답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대답하겠습니다. 다른 분들한테서 이에 관련된 질문이 있으면 받고 싶습니다.

【외국인 기자: 15분 6초부터 16분 50초까지(자막)】

Q: "20 세기의 전쟁과 전체주의의 희생자"라는 칼럼에서 나치스나 소련에 대해서는 언급했는데 일본에 관한 기술이 대부분 없는 이유는?

【후지오카: 16분 51초부터 19분 33초까지】

A: 네. 먼저 제가 짧게 대답 하겠습니다. 이 테마는 오히려 야기 교수님 전문분야이므로 야기교수님한테서 자세한 대답을 받고 싶습니다만 먼저 저는 두가지 내용에 대해 대답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이 "20 세기의 전쟁과 전체주의의 희생자"라는 읽을거리 중에서 "일본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취지의 질문였습니다.
그리고 일본도 예외가 아니라고 분명히 적혀 있고 그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을 별로 충분히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만, 실은 일본이 아시아 각국에 대해 엄청난 큰 희생을 주었다는 것에 대하여는 본문 중에서 꽤 많이 썼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의미에서는 지금 질문이 조금 오해인 것 같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둘째 문제입니다만, 일본이 전체주의 국가였다는 것에 대하여는 저는 견해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마는 일본은 분명히 전쟁시 한 기간 동안 민주적인 절차를 여러 가지 형태로 제한했습니다. 그러한 시기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메이지 헌법 체제, 메이지 헌법이 정지된 것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부의 정통성이 쭉 계속되어 있었고 독일와 같이 일당 독재 히틀러와 같은 지도자가 있던 적도 없었으며 일관된 계획이 있었던 적도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실은 일찌기, 지금 질문해 주신 기자분과 같이, 일본 교육을 받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말씀드린 “일본과 독일이 근본적으로 사정이 다르다”고 하는 것과 “일본이 당시, 전체주의 국가였다”는 표현이 결코 올바르지 않다고 가르쳐 주신 것은,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립 대학의 리처드·마이니어 교수라는 도쿄 재판을 연구하시는 분한테서 저는 책으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과연, 그렇다」라고 하는 것으로, 사실의 인식을 바꾼 나름입니다.

【기자(니시무라 고유씨): 19분 35초부터 20분 02초까지】

Q: 이러한 기회라고 할까 퍼블릭·디플로머시라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 정부와 문부 과학성에 대해서 “만드는 모임”으로부터 좀더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을까요.
일본인이 일본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것과 현재의 교과서 현상을 더 정부가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십니까.

【야기: 20분 03초부터 21분 44초까지】

A: 그러면, 대답 하겠습니다.
먼저, 일본의 교과서 제도에 대해 해외 여러분들은 정확하게 이해를 하지 않으신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일본 문부 과학성이 그 와 같은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일어난 부분입니다.

일본에는 검정 제도가 있습니다. 민간의 교과서 회사가 작성한 교과서를 문부 과학성이 검정합니다. 그리고 나서 각 지역의 교육위원회가 그 교과서 중에서 하나를 채택하는 제도입니다. 이 점, 국정교과서 제도와는 다릅니다. 이 점, 정확히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문부 과학성이 홍보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2점입니다만, 외국의 수뇌중에도 저희 교과서를 읽지 않을 단계에서 비판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거기서 저희들로서는 오늘 이러한 형태로 외국어으로 번역된 것을 보여드리고자 하는 바입니다. 원래 이것은 문부 과학성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하고 저희들이 생각합니다.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만 일본 정부는 외국에 대한 발언력이 약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국인 기자: 21분 46초부터 21분 58초까지(자막)】

Q: 대학의 역사 교육과 사용되고 있는 교과서에 대해서

【후지오카: 22분 01초부터 22분 16초까지】

A: 저, 조금, 어떤 취지의 질문인가 포인트를 알 수 없었습니다만 대학에서는 검정교과서라는 것은 사용하지 않으므로, 사정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 기자(파이낸셜타임즈): 22분 17초부터 22분 24초까지(자막)】

Q: 객관적인 역사 따위는 있는 것입니까

【후지오카: 22분 25초부터 25분 01초까지】

A: 조금 역사 철학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역사에는 사실로 확정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입장 차이 혹은 이데올로기의 차이라든가 그런 것에 관련없이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비뚤어지게 쓰는 것 즉 그것을 틀리게 쓰는 것은 올바른 역사에 있어서는 용서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history”라는 말 안에 “story”가 있는데 하나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야기라면 하나의 사실이 원인이 되고, 다음 결과가 일어나고 만들어지는 일들을 역사를 쓰는 측이, 말하자면 자주적으로 구성한다고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사의 경우에는 그 말하는 입장 문제가 반드시 떠오릅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쓴 역사는 일본의 역사이기 때문에 일본인이나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걸어 왔는가를 의미있는 전체적인 하나의 이야기로서 썼습니다.
따라서 이것이 한국 분들의 역사, 미국 역사, 영국 역사와도 각각 다른 것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지 워싱턴이 독립 영웅인가 용서받지 못할 반역자인가 하는 것은 일찌기 영국 교과서와 미국 교과서에서는 평가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이런 입장에서 구성된 역사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객관적인 역사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사실에 대해서는 역시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에 근거하고 역사가 기술되어야 합니다. 즉 그러한 사실에 근거한 역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면 기술된 역사가 전부 똑 같은가 하면 이것은 말하는 입장이나 누구에게 전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각각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느 특정한 사람의 일생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고 가족의 역사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고 뭐 모두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 기자: 25분 02초부터 25분 10초까지(자막)】

Q. 남경 사건의 병사와 시민 각각의 희생자의 수에 대해

【후지오카: 25분 11초부터 31분 12초까지】

A: “만드는 모임”의 공동적인 견해는 없으므로 그 점은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 견해로 괜찮으시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남경에서 일어난 것은 전쟁, 하나의 전쟁 중의 전투였습니다.
일본군은 1937년 12월 13일 남경성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그 24시간전에 일본군이 무혈 개성을 권했습니다. 국민당 측에 권한 것입니다. 정확히 유럽의 전쟁으로 프랑스가 무혈 개성 된 것처럼, (정정) 파리가 무혈 개성 된 것처럼, 남경도 여러 가지 문화 유산이 있으므로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혈 개성 하도록 권했습니다만 이것은 무시당했습니다.
그래서 전투가 일어난 것입니다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에 대해서 사망자 수가 어느 정도 특정할 수 있습니다.

전투로 죽은 국민당 병사 수는 약 1만 5천 정도라고 추측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해가 바뀌어서 초봄에 사체가 부패하므로 위생상 문제가 있다고 일본군이 돈을 내 중국의 사람들을 고용해서 매장의 처리를 했습니다. 당시의 매장 처리 능력이나 그 날등을 엄밀하게 계산한 연구가 있습니다만 거기에 의거하며 매장 된 사망자 수는 1만 5천 정도입니다.

일본병도 많이 죽었습니다만, 전투로 죽었습니다만 일본병사에 대해서는 일본군이 점령했을 때에, 일본병사인 인식표라는 금속으로 만들오진 표시가 있는데 그것을 기본으로 해 일본병을 모으고 불로 화장처리했습니다.

다음에 민간인에 대해서 실은 남경성 내에 15명으로 되는 서구사람들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져서 “거기를 중립 지대로서 어느 쪽 군도 들어가지 않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중국군은 여기에 군복을 벗어 대량으로 비집고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누중에 문제가 생깁니다.

어쨌튼 점령한 일본군에 대해서 그 커뮤니티가 식량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중립 지역, safety zone안에 20만명의 중국 시민이 있으므로 그 식량을 조달해 주었으면 하는 요청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통 남경사건 남경대학살로 30만명 시민이 살해당했다고 말합니다만 실제는 그 일주일 후 점령된지 일주일 후에 또 위원회가 식량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의 수는 역시 20만명입니다. “20만명의 차이니즈·시비리안이 있다”는 식으로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주일 후에도 같은 숫자가 나오고 그 일주일 후에도 똑 같은 식으로 계속되어서 1개월 후에는 무려 안전구의 중국인 시민수는 25만명에 증가했습니다.
따라서, 몇 만이라든지 몇 천이라든지 하는 레벨의 시민 살해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 서양인의 위원회는 매일 매일, 극명하게 그 전쟁 피해, 뭐 다양한 사건을 극명하게 기록한 문서를 남겼습니다.
이것을 저희들 상세하게 연구했습니다만 거기에서 누구한테서 얻어 들은 이야기로 기록된 내용이 아니라 직접 기술가가 보았다고 해서 증언한 살인사건은 단 1건입니다.
즉 남경대학살이라는 것은 저는 시민에 대한 계획적인 대학살이라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국민당 병사가 그 전투로 죽었다는 것은 사실이고 만단위의 전사자라면 아마 누누히 시체가 겹쳐 쌓이는 상태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을 본 사람이 몇 십만이라든가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른바 불법학살이 아니라 전투에 의해서 생긴 것으로 이해합니다.

단, 그 완전히 일본군에 의한 여러 가지 사건이 없었다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고 그러니까 교과서의 남경 사건과 같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 진상은 그런 것으로 이 10년정도 남경 사건의 연구도 일본에서 급속히 진행되었으므로 나는 방금전의 질문에 관련해서 말하면 이것은 확실히 사실이 어떠한가 하는 문제이므로 입장의 차이에 관계없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정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 기자: 31분 14초부터 31분 53초까지(자막)】

Q: 수중에 있는 영역 된 문장에는 남경 사건의 기술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만···

【후지오카: 31분 58초부터 32분 14초까지】

A: 이거는 좋습니까? 지금 질문에 대해서는 주에 써 있습니다. (외국인 기자 「chuu? 」) Note군요. In foot note에 써 있습니다.

【외국인 기자(가디안지?) : 31분 16초부터 32분 55초까지(자막)】

Q: 왜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는 별로 채용되지 않다고 생각합니까

【야기: 32분 58초부터 34분 45초까지】

A: 그러면 제가 대답합니다.
앞서 저희 스피치속에서 “일본의 교육계에서는 여전히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단체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큰 교직원 단체가 2개 있습니다만 모두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신봉하는 단체입니다. 믿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리고 이 2개의 단체 및 그 관련 단체가 교과서 채택 단계가 되면 매우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 활동에 대해서 일부에서 우익 혹은 극우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 모임 찬동자를 보시면 아시다싶이 저희 단체는 일본의 말하자면 에스터브리시먼트를 규합한 단체입니다.
따라서 저희 활동에 대해서는 일본국민 중 많은 사람들이 지지해 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일본국민 다수의 의사와 교육계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국민 대다수의 소리가 교육계에 닿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느 교과서를 선택하는가 할 때에 역시 마르크시즘 입장에 서는 교직원 조합의 영향력이 여기에 발휘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채택이 별로 없었다고 저희들은 이해합니다.

【기자(일본경제): 34분 47초부터 36분 24초까지】

Q: 회장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교과서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만 작년이던가 (여기서 소속과 이름을 질문받았다) 일본 경제 신문의 스미에라고 합니다.

작년인지 사이타마현 교육위원에 “만드는 모임” 부회장이신 다카하시 시로우씨가 임명되어 현지에서 대단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타카하시씨에 대해서 이것은 후지오카씨입니까, 12월의 신문으로 “집필자로서도 감수자로서도 전혀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 없다”고.
그리고 타카하시씨 자신도 “금년도의 교과서 채택에 대해서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만, 최근 공민의 교과서 감수자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부분의 사실관계에는 허위라면 좀 심할지 몰라도 조금 어긋나는 부분이 있지 아닐까 느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만드는 모임”과 후요사의 교과서가 완전히 일치된 불가분의 존재로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큰 문제가 하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냐 하면 이른바 흰색 표지 책이군요 먼저 유출해 버려 문부 과학성으로부터 재삼 주의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아주 규칙위반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것에 대해 일체불가분인 “만드는 모임” 분으로서는 이 문제성·책임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후지오카: 36분 28초부터 38분 51초까지】

A: 이제 시간이 없고 너무나 세세한 이야기이니까 많은 기자의 관심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다음에 개별적으로 대답하면 어떻습니까? (조금 알아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오고가서) 자, 그럼 코멘트하겠습니다. 좋습니까.

다카하시 시로우씨는 “만드는 모임” 부회장을 작년 가을에 사임하셨습니다. 그것은 물론 본인의 의사입니다. 그리고 감수자도 사임하셨습니다.
작년 4월에 검정을 신청한 단계에서는 감수자의 명부에 들어가 있었습니다만, 그 후 감수자를 사임하고 계시는 것으로 교과서와는 지금 관계가 없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교육위원이 되는 격요건으로서 교과서 집필자임은 전혀 방해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살고 있는 분쿄구라는 곳의 교육위원은 어떤 중학교 역사의 교과서 집필자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배제된다든가 그런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만드는 모임”과 후요사가 일체불가분한 관계라는 인식도 잘못한 것입니다.
문부성에 검정 신청한 것은 어디까지나 후요사라는 교과서 회사이며 “만드는 모임” 멤버들은 가각 집필자로 참가했습니다만 모임자체가 집필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질문 배경에 있는 일련의 생각은 일본 법률제도를 잘 모르시는 분 혹은 현상에 대한 오해에 근거한 것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자: 38분 54초부터 40분 08초까지】

Q: 검정되기 전의 것과 검정 후 양쪽 모두 읽었습니다.
특히 검정되기 전의 오리지날 판에 관해서는 중국의 상황 악화에 대해서 꽤 중국 측에 책임이 있는 식으로 적혀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중국인이 자신들로 나라가 일체화된 것으로 근대화할 능력이 없었고, 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혹은 중국에서 만주에 살는 일본 주민에 대해 매우 위협이 주어지고 있었다고는 것. 그리고 중국인으로부터 보이콧이 있었다. 그리고, 일본군에 대한 도발 행위가 끊임없이 행해졌다, 라고.
이런 것을 가지고 중국 정세가 악화되었다고 하는 것이, 꽤 명확한 톤으로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기술방식이 검정에 의해 꽤 약화되어 나는 검정 후의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밸런스가 회복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오리지날의 버젼과 같은 스타일이 일본국민의 균형적인 역사, 그리고 일본국민의 실패도 올바르게 바라보는 역사로 적절하다고 생각하셔서 쓰신 건지요?

【후지오카: 40분 09초부터 41분 53초까지】

A: 검정전과 검정 후를 비교하신 코멘트입니다만 저는 말씀하시는 방향으로 다시 문장을 고쳐쓰게 되었습니다. 즉 검정에 의한 변화는 있었습니다만 대국적으로는 저희들이 생각하는 역사관이 유지되어 있다고, 기본적으로는 변함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종래 만주 사변과 같은 사건이 일본의 일방적인 침략인 것처럼 전후 쭉 가르쳐 주고 왔습니다. 그것은 역시 최근의 연구 일본국내 연구도 포함해서 지금까지의 견해가 매우 밸런스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새로운 연구를 하면 할수록 전태국 대사였던 오카자키 히사히코씨가 잘 말씀하셨습니다만 “당시 만주는 바로 팔레스타인의 반란(인티파다)과 같은 상태였다”는 식으로 비유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만 그러한 현실 가운데서 일본은 대단히 정책적 선택에 고뇌를 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올바른 선택였는지 아닌지는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많이 논의해야 할 여지가 있고 또한 여러 가지 문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러한 상황에 당시 일본이 직면하고 있었던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신화사 통신): 41분 53초부터 43분 37초까지】

Q: 네, 저 신화사 통신의 (알아 들지 못함)이라고 합니다.
저는 30대의 젊은이인데 할아버지나 할머니들 입으로부터 그 때 일본 군대가 이르킨 잔학한 행위를 자주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강제 연행인가 일본 군대는 마을 아이부터 노인까지 남성을 전부 죽인 것, 그리고 난징에서 있었던 그 난징대학살의 생존자들도 만난 적도 있습니다.
그녀 이야기에 의하면 일본 군대는 주변 평화로운 시민을 전부 죽였다고 하는 사실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군대는 제 고향에서 공군 활주로를 만들기 위해서 마을을 점령하고, 마을사람들을 전부 불편한 곳에 쫓어내 지금까지 아이들의 통학도 불편하네요.

그러나 “만드는 모임” 교과서는 단지 일본 전쟁으로의 피해를 강조하고 일본은 이 식민지에 어떤 행복을 가져온 것을 강조하고, 별로 일본 군대의 중국에 가져온 이 재난을 별로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가해자 입장에 서서 이 전쟁을 반성하지 않았다느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울 수 있을지 저는 걱정합니다. 일본은 다시 전쟁 전의 길에 걸어갈까, 걷게 될까봐 걱정입니다.
그와 관련해서 야기교수님이나 후지오카교수님의 생각을 소개해 주기를 바랍니다.

【후지오카: 43분 38초부터 46분 53초까지】

A: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 그것이 어떤 사실인가 하는 것을 여기서 확정할 수 없는 그러한 성격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인지 사실이 아닌지를 논의하지 않고, 또 그것이 어떤 역사의 위치를 차지할지도 여기서 논의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단지,마치무라 문부대신, (정정) 마치무라 외무 대신이 중국의 외무 대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일본에 8 종류 있는 교과서를 나는 전부 읽었다”고. 그리고 “전쟁을 미화하는 교과서는 단 하나도 없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8 종류 교과서 중에는 저희 교과서도 들어가 있고 그것도 분명히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 타하라소타로씨라는 일본에서 큰 영향력이 있는 져널리스트가 계십니다만, 아, 타하라 소이치로군요, 이 분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마치무라씨, 마치무라 외무대신에 대해서 저희 이 교과서의 현행의 버젼입니다만, (교과서를 꺼내 표지를 기자에게 제시하면서) 이 교과서를 프로에서 제시하면서 “나는 이것을 읽었다”면서 중국에 대한 전쟁에 대해서도 일본이 해온 것을 부정적, 비판적으로 쓰고 있다고.
그러니까 중국 사람들이 지금 비판 하는 것은 완전히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그것을 더 말해야 한다”고 타하라씨는 외무 대신에게 요구했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사실이 밝혀져 가면 많은 오해는 풀려 갈 것으로 저는 믿고 있습니다. 또한 그와 같은 정당한 판단을 세계 사람이 해 주실 거라고 저는 기본적으로는 신뢰 있습니다.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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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5 00:32】 未分類 | トラックバック(0) | コメント(4) |
新しい歴史教科書 序章 서장(序章) 역사로의 초대
序章 <歴史への招待>
歴史を学ぶとは

 歴史を学ぶのは、過去の事実を知ることだと考えている人がおそらく多いだろう。しかし、必ずしもそうではない。歴史を学ぶのは、過去の事実について、過去の人がどう考えていたかを学ぶことなのである。

 今の中学生にとって、中学校に通うことは空気を吸うように当たり前のことであり、日課であるが、ほんの半世紀前までの日本人の中には、中学校に行きたくても行けない人がたくさんいた。それより前の時代には、小学校にも行けず、7、8歳で大きな商店の丁稚や豊かな家庭の使用人として働く子どもが少なくなかった。どんなに勉強がよくできる子どもであっても、教育は権利だと法律に書かれていても、国の生産が低く富が限られていた時代に、公平は単なる理想にとどまっていた。今の中学生のお祖父さんやお祖母さんの世代がよく知っていた現実である。

 そのような不公平が実際にまかりとおっていた社会に不快を覚え、ときにひそかにいきどおりを感じて、なぜもっと社会的公正が早くから行われなかったかという疑問や同情をいだく人もおそらくいるだろう。しかし歴史を知るとは、そういうこととは少し別のことなのである。

 当時の若い人は、今の中学生よりひょっとすると快活に生きていたかも知れないではないか。条件が変われば、人間の価値観も変わる。

 王の巨大墳墓の建設に、多数の人間が強制的にかり出された古代の事実に、現代の善悪の尺度を当てはめることは、歴史を考える立場からはあまり大きな意味がない。

 歴史を学ぶとは、今の時代の基準からみて、過去の不正や不公平を裁いたり、告発したりすることと同じではない。過去のそれぞれの時代には、それぞれの時代に特有の善悪があり、特有の幸福があった。

 歴史を学ぶのは,過去の事実を知ることでは必ずしもないと言ったが、過去の事実を厳密に、そして正確に知ることは可能ではないからでもある。何年何月何日にかくかくの事件がおこったとか、誰が死亡したとかいう事実はたしかに証明できる。それは地球上のどこにおいても妥当する客観的な事実として確定できる。けれども、そういう事実をいくら正確に知って並べても、それは年代記といって、いまだ歴史ではない。いったいかくかくの事件はなぜおこったか、誰が死亡したためにどういう影響が生じたかを考えるようになって、初めて歴史の心が動き出すのだといっていい。

 しかしそうなると、人によって、民族によって、時代によって、考え方や感じ方がそれぞれまったく異なっているので、これが事実だと簡単に一つの事実をくっきりえがき出すことは難しいということに気がつくであろう。

 ジョージ・ワシントンは、アメリカがイギリスから独立戦争(1775~1783)で独立を勝ちえたときの総司令官であり、合衆国の初代大統領であった。アメリカにとっては建国の偉人である。しかし戦争に敗れてアメリカという植民地を失ったイギリスにとっては、必ずしも偉人ではない。イギリスの歴史教科書には、今でもワシントンの名前が書かれていないものや、独立軍が反乱軍として扱われているものもある。

 歴史は民族によって、それぞれ異なって当然かもしれない。国の数だけ歴史があっても、少しも不思議ではないのかもしれない。個人によっても、時代によっても、歴史は動き、一定ではない。しかしそうなると、気持ちが落ち着かず、不安になるであろう。だが、だからこそ歴史を学ぶのだともいえる。

 歴史を固定的に、動かないもののように考えるのをやめよう。歴史に善悪を当てはめ、現在の道徳で裁く裁判の場にすることもやめよう。歴史を自由な、とらわれのない目で眺め、数多くの見方を重ねて、じっくり事実を確かめるようにしよう。

 そうすれば、おのずと歴史の面白さが心に伝わってくるようになるだろう。

~~~~~~~~~~~~~~~~~~~~~~

서장(序章) 역사로의 초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 있었던 사실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마 많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 않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의 사실에 대해서 지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었는지를 배우는 일이다.

현재의 중학생들에게 중학교로 다니는 것은 공기를 들이마시도록 당연한 일이며 일과와도 같지만 그저 반세기전까지만 해도 일본사람중에서는 중학교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그보다 오래전의 시대에는 초등학교조차도 가지 못하고 7, 8살이면 큰 상점의 견습생이나 풍부한 집안의 사용인으로 일하는 아이가 적지 않았다. 아무리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아이라고 해도 교육은 권리라고 법률에 적혀 있어도 나라의 생산성이 낮고 재산 소유자가가 한정되어 있었던 시대에는 공평성은 단순한 이상에 머무르고 있었다. 현재 중학생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잘 알고 있던 현실이다.

아마도 그러한 불공평이 실제로 보편적이었던 사회에 불쾌를 느껴 때로는 남 몰래 분노를 느끼고, 왜 더 사회적 공정이 일찍부터 이르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나 동정을 갖게 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안다는 것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일인 것이다.

그 때 당시의 젊은 사람들은 지금 중학생보다 혹시 쾌활하게 살아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닐까. 조건이 바뀌면 사람의 가치관도 바뀐다.

왕의 거대 분묘 건설에 엄청 많은 인간이 강제적으로 동원된 고대역사의 사실에 현대 선악의 척도를 적용시키는 것은 역사를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별로 큰 의미가 없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지금 시대의 기준에 입각하여 과거 역사의 부정이나 불공평을 까리거나 고발하는 것과 같지 않다. 지난 시대에는 각시대 특유의 선악 판단이 있었으며 특유의 행복이 있었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반드시 과거의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 의미미는 거사의 사실을 엄밀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알 수 있음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이기도 하다. 몇년 몇월 몇일에 여차저차한 사건이 일어났다든가 누가 사망했다든가 하는 사실은 분명히 증명할 수 있다. 그것은 지구상 어디에 있어도 타당하는 객관적인 사실로서 확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아무리 정확하게 알아내어 열거시켜도 그것은 연대기에 ㅂ불과하며 아직도 역사는 아니다. 도대체 이와같은 사건들이 왜 일어났는 ?누가 사망했음으로써 어떤 영향이 생겼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역사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사람에 따라서, 민족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 생각이나 사고 방식이 완전히 차이가 날 수 있으므로 쉽게 이것이야말로 사실이라며 하나의 사실로 선명하게 그려내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죠지·워싱턴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전쟁(1775~1783)에서 독립을 이겨낸 총사령관이며, 합주국의 초대 대통령이였다. 미국에 있어서는 건국의 위인이다. 그러나 전쟁에 져버려 미국이라는 커다라란 식민지를 잃은 영국에 있어서는 반드시 위인은 아니다. 영국 역사 교과서에는 지금도 워싱턴 이름이 쓰여 있지 않은 것, 독립군이 반란군으로 기술한 것도 있다.

역사는 민족에 따라서 각각 다른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나라의 수만큼 역사가 있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에 따라 시대에 따라 역사는 움직여, 일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기분이 침착하지 않아 불안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이니 만큼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도 할 수 있다.

역사를 고정적이며 경화된 것과 같지 생각하는 것을 구만두자. 역사에 선악관을 적용시켜 현재의 도덕관념으로 판단하는 재판장으로 만드는 일도 그만두자. 역사를 자유로운 얽매여 있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고 수많은 견해를 거듭하면서 차분하게 사실을 확인하도록 하자.

그렇게만 한다면 저절로 역사의 재미가 마음에 전해져 올 것이다.
【2005/05/14 14:18】 未分類 | トラックバック(0) | コメント(0) |
ブログ開設の理由
今、勉強している韓国語の練習のために、「新しい教科書を作る会」発行の「新しい歴史教科書」の翻訳を少しずつ掲載し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

最初、検索エンジン大手のブログサービスを利用しようと思ったのですが、投稿文字数の制限がある上、色々と使いにくかったので、再度こちらでやり直しです。ハングルの入力もできるようですし、こちらで続けることができるといいのですが。

拙い翻訳ですので、翻訳のご利用は、ご自分の責任の元に行って下さい。

また、ご意見やご指摘などありましたら、コメント欄に頂けると幸いです。宜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

*****

尚、「新しい歴史教科書」はこちらでその一部を読むことができます。

http://www.tsukurukai.com/05_rekisi_text/rekisitext_index.html
【2005/05/14 14:09】 未分類 | トラックバック(0) | コメント(0) |
他言語入力テスト
fc2ブログではタイトルも含めて、他の2バイト系文字も入力が可能なようですが、念のため、書き込みテスト。

한글입력도 가능한가?
【2005/05/14 14:06】 未分類 | トラックバック(0) | コメント(0) |
開設 即ブログを引っ越しました。
つい昨日、別のサービスでブログを開設したばかりだったのですが、あまりにも表示が遅いのと、投稿文字数に制限があるようなので、止めました。

ネットで調べて、使いやすそうなこちらにお引っ越し。

さて、末永く続けば良いのですが・・・

どうぞ宜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
【2005/05/14 00:07】 未分類 | トラックバック(0) | コメント(0) |
てつの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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